광주지역 농아인들이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 땅을 밟았다. 입도에 성공한 이들은 말 대신 표정과 손짓으로 독도를 만난 기쁨을 표현했다.

광주시농아인협회 소속 회원 21명 및 수어통역사 등 전체 29명으로 구성된 울릉도ㆍ독도 탐방단은 '독도의 날'을 맞아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울릉도ㆍ독도를 찾았다.

(사)광주시농아인협회가 주최, 주관하고 광주시가 지원한 이번 탐방은 '수어(手語)'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농아인들이 한데 어울려 서로 이해하고 단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25일 오전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울릉도로 향하는 선박에 몸을 실은 농아인들은 심한 너울 때문에 생긴 배멀미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4시간여만에 도착한 울릉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수어를 하느라 이들의 손짓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김순임(50ㆍ여)씨는 "너울이 유난히 심해 여기저기서 배멀미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날 예정돼 있던 독도에 갈 수 있을 지 걱정될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울릉도에 도착하는 순간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넋을 잃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6일에는 독도 탐방의 날. 오전 7시까지 부두로 모여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누구 하나 늦지 않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오히려 30분 일찍 나와 기다리는 농아인들도 상당수 있어 인솔자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김상훈(27)씨는 "영상통화가 없던 시절엔 정해진 시간에 약속 장소로 나오지 않으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어 시간에 민감한 농아인들이 많다"며 "시간약속을 준수하는 것이 우리들에겐 습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심한 너울이 있던 전날과 달리 이날 동해는 잠잠했다. 울릉도로부터 87.4㎞ 떨어진 독도로 향하는 크루즈 선박에서 배멀미로 고통받는 농아인은 없었다. 독도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접안이 가능할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이내 21명의 농아인들이 생애 처음으로 독도땅을 밟았다.

최창기 전 광주시농아인협회 회장은 "협회 교류전 등으로 울릉도만 5번째 방문했는데 번번이 독도 입도에 실패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독도 땅을 밟을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독도의 날을 맞아 농아인들과 함께 독도 땅을 밟게 돼 매우 기쁘고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상통화로 함께 오지 못한 농아인에게 독도의 모습을 보여주던 기원삼(47)씨는 "독도 접안 가능 여부가 섬 인근에 도착해야 결정된다고 해서 마음을 졸였는데 입도하게 돼 너무 행복하다"며 "개인일정 때문에 이번 탐방에 참여하지 못한 지인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30여분간 독도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농아인들은 강렬한 추억을 간직한 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울릉도로 이동했다.

2박 3일간 농아인들의 수어 통역을 담당한 공정예(25ㆍ여)씨는 "평소엔 농아인들이 당면한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통역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즐거워하는 농아인들의 감정을 전할 때가 많아 저도 덩달아 기뻤다"며 "앞으로도 농아인들이 즐길만한 행사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진영 광주시농아인협회 사무처장은 "2박3일의 여정 속에서 다른 사람과 수어로 대화하기, 국가별 수어사용법, 농아인들의 일상속 수어배우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면서 "매년 농아인한마당 큰잔치를 통해 9000여명의 광주시 청각ㆍ언어장애인들이 서로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수어가 청각ㆍ언어장애인들만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법적 지위를 갖는 모두의 언어로 인식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탐방에 참여한 21명의 농아인들은 독도명예주민증을 신청했다.

울릉도ㆍ독도=박종호 기자